【서울=뉴시스】양소리 기자 = 영국 하원이 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탈퇴합의 법안(WAB·Withdrawal Agreement Bill)을 사흘 내 신속처리한다는 내용의 계획안(programme motion)을 부결했다.
BBC, 가디언 등은 이에 따라 오는 31일 어떤 일이 있어도 브렉시트를 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약속도 수포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계획안 = 브렉시트 법안 통과 의사일정안
브렉시트 계획안이란 브렉시트에 필요한 법안을 오는 31일 전 처리하기 위한 신속 처리안이다.
오는 24일까지 EU 탈퇴협정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뒤 상원과 여왕재가를 거쳐 오는 31일 브렉시트를 시작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영국법(헌법 개정 및 통치 법령·Constitutional Reform and Governance Act of 2010)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적 조약의 경우 비준 전 최소 21일간 의회에서 논의하도록 한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기 위함이다.
존슨 총리는 이에 상관 없이 3일의 압축된 시간 동안 법안 통과를 끝내기 위해 의사일정 법안, 즉 계획안을 내놨다.
하원은 그러나 "3일은 WAB를 검토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며 계획안을 찬성 308표, 반대 322표로 부결했다.
이에 따라 31일 브렉시트도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EU 탈퇴합의 법안, 어디까지 통과됐나?
간단히 말하면 무산된 상태다. 계획안이 부결되며 존슨 총리가 "EU 탈퇴합의 법안 상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영국은 법안을 심사할 때 3번을 읽으며 논의한다. 통상 통과까지 몇 주일이 걸린다.
영국 정부는 전날 EU 탈퇴합의 법안 및 설명서를 공개하면서 제1독회 단계를 마쳤다.
제2독회는 법안의 목적과 전반적인 원칙에 대해 토론을 하는 단계다. 이 단계를 넘겨야 법안이 제3독회 단계로 이송된다.
하원은 EU 탈퇴합의 법안을 제2독회 단계에서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통과시켰다.
존슨 총리는 30표의 큰 표 차이를 보고 "하원이 거래(Deal)를 성사시킬 것"이라며 기뻐했으나 찰나의 순간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계획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하원은 EU 탈퇴합의 법안의 입법이 완료될 때까지 존슨 총리와 EU가 구상한 브렉시트 합의안의 승인을 보류했다.영국이 브렉시트를 실시하려면 합의안을 실행할 법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는 "이번 달 말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방법은 찾기 힘들다"고 비관했다.
◇분열된 집권 보수당, 결국 브렉시트에 발목
현재 집권 보수당에서 의결권이 있는 의원은 287명이다.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320석)에 한참 모자라다.
존슨 총리가 지난달 초 당론에 반해 투표했다는 이유로 21명의 의원을 출당조치한 것이 족쇄가 됐다.
계획안에 찬성한 308명의 의원에는 제1야당인 노동당 소속이 5명, 보수당 출신의 무소속이 18명 포함됐다. 야당의 반란표와 마음을 돌린 무소속 의원의 결정에도 과반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 의원 10명은 존슨 총리의 북아일랜드 국경 해결법에 우려를 나타내며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존슨 총리, 조기 총선 카드 만지작?
영국 현지 언론은 이후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을 추진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표결을 앞두고 "의회가 브렉시트 시행을 거부하고, 내년 1월 혹은 그 이후로 브렉시트를 연기하려 한다면 정부는 이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법안을 취소한 뒤 총선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한 뒤 다시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당 역시 31일 노딜(No deal·합의 없는) 브렉시트를 감행하느니 총선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 총선에서 존슨 총리의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보다 의석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디언은 이에 따라 존슨 총리가 10월31일 브렉시트 약속을 깨고, 추가 연기를 결정한 뒤 다시 한 번 브렉시트 합의안의 의회 통과를 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